누구나 첫사랑의 기억은 아픕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추억은 또렷하고, 기억은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자를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수술실로 가면서도 화장을 지우지 말라고 당부 했던 여인. 이미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는 그를 만나면 그 시간에도 예뻐 보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연을 안고 수술실로 갔던 환자는 중환자실로 돌아와, 안정적인 상태로 깨어 났습니다. 그때 환자는 이젠 화장을 지워도 되겠다며, 따뜻한 물수건 하나를 부탁해 왔습니다. 물수건을 건네며 농담처럼 물어 봤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도 그렇게 예뻐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 “응, 내 첫사랑…” “그래? 그가 알아 볼 수 있었을까?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는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알아 봤을 거라는 이야길 강조했고, 죽도록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말도 빼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근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헤어졌어?”라는 진부한 질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그걸 나도 모르겠어, 어느날 보니까 헤어져 있더라고.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그는 어디에 숨었는지 머리카락 하나 안보이게 사라졌어. 그리고 몇 십년이 흐른 어느날, 날 찾는다는 연락이 온거야.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궁금했고, 왜 헤어졌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어. 나도 혼자였고, 그도 혼자였기에 급속도로 다시 가까워졌지. 그리고 두달 후,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다시 만나 그동안 너무도 절절했던 사랑을 다시 꽃피우고 싶었는데, 그는 정말로 영영 가버린거야. 그리고 난 이렇게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됐잖아. 난 그를 따라 가야 한다고 믿었고, 날 데리러 올거라고 확신했지. 못다한 사랑, 그곳에서라도 이루어야 하니까… 그래서 화장을 지우지 않으려고 했던 거야.” 그녀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천천히 내려 앉았습니다. 너무도 진부한 사랑 타령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얼마나 사랑했으면 죽어서도 예뻐 보이고 싶었던 걸까요.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언제 어느때 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기다리며 신실한 기도 같은, 마음의 화장을 곱게 하며 그 시간을 깨어 기다립시다. 어느 때 그분이 “나, 여기 있다.” 하고 오실지 모를 일이니, 늘 푸른 마음인 상록수의 대림환을 만들고, 첫번째 보라빛 촛불을 켜며 기다립니다. 그 여인이 죽어서도 만나고 싶은 첫사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글ㅣ전지은 글라라(『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