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을 미국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많은 죽음을 목격하는 삶 속에서 가슴 아픈 사연들도 수없이 많이 만났습니다. 중환자실의 일상은 말 그대로 ‘드라마 스페셜’의 연속이고, 그 안에서 저의 자리는 늘 중압감으로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돌보아야 할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 자리에서 함께하며 최선을 다한다고는 했지만, 미숙한 것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했습니다. 보호자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경청했고, 가만히 안고 등을 토닥이거나, 눈물 닦을 휴지를 건네주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의연한 척했지만 힘든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퇴근길, 서쪽 하늘로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보며 혼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습니다. 명치 끝이 얼얼하거나 가슴 속으로 서늘하게 불어 드는 바람이 되었던 사연들을 내려놓기 위해 제가 했던 일은 ‘메모’였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 깊이 들어왔던 사연들을 메모해 놓으면, 그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메모했던 사연을 꺼내 글을 쓰며, 좀 더 객관적으로 감정을 최대한 억제한 상태가 되는 걸 알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나면 가슴에 달려 있던 추의 무게가 좀 가벼워졌습니다. “늘 깨어있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제게 맡겨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깨어있으며’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과 사의 일은 하느님께서만 주관하는 일이라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가슴에, 70여 년 해로를 한 부부는 남편의 품에, 힘겨웠던 부모님의 병시중은 남겨진 딸의 짓무른 눈가에 남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대답하는 그 순간, 모든 고통은 사라지며 얼굴은 평안함을 찾습니다.
모든 고통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임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였던 저의 자리. 미미한 한 평신도이지만, 죽음은 삶의 한 연장 선상에 있는 한 점이었고, 기도하는 마음 만이 평온한 길에 이를 수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멘.
글ㅣ전지은 글라라(『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