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톨릭 생활성가 팀 ‘열일곱이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팀 내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저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 앞에서 성가를 부르는 기회를 자주 가져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찬양 사도’ 혹은 ‘성가 가수’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꽤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찬양 사도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나 같은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 노래하면 오히려 하느님을 욕보이는 것은 아닐까?’
어떨 땐 그런 생각이 깊어져 성전에 앉아계신 많은 신자분 앞에서 저의 신앙을 말과 노래로 이야기하고 있는 제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신앙생활을 해온 시간도 더 길고, 하느님과 훨씬 친밀히 지내고 계실 것만 같은 분들 앞에서 제가 만난 하느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영 부끄럽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주보성인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장면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그것이 문득 저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10대 소년이었던 예레미야에게 처음 주님의 말씀이 내렸을 때, 예레미야는 “주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예레 1,6)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지요. 하지만 그런 예레미야에게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라며 용기와 희망을 주십니다. 제가 만난 주님을, 제가 체험한 주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기에 저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여겼던 저에게 이 장면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제가 잘나서, 제가 완벽해서 하느님이 불러주신 게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가 부족하기에 당신의 사랑을 더 아낌없이 주시는 분, 제가 부족하기에 당신의 도구로 친히 써주시는 분, 심지어 부족한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늘 함께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제 주보성인의 응답에 대해 묵상한 후 저는 좀 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 사도’로서의 소명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오롯이 담아 예레미야서 1장 말씀을 기반으로 노랫말을 썼는데, 그 곡이 바로 ‘열일곱이다’ 팀에서 발표한 ‘소명’이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는 이런 구절로 끝납니다.
‘부족한 도구로 일하시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나의 나약함 아시는 주님께서 날 부르시네.’
이 얼마나 압도적인 사랑입니까?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입니까? 저의 부족함을 다 아시는 분께서 저를 더 큰 사랑으로 불러주신다니요! 그러니 저는 그저 그 무한한 사랑에 부족한 저를 내어맡길 뿐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주님께 오롯이 봉헌하며, 그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를 기쁘게 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보잘것없는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는 게 저에겐 너무나 놀랍고 가슴 벅찬 신앙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글ㅣ추준호 예레미야(가톨릭 생활성가 찬양크루 ‘열일곱이다’ 보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