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하고 청하지만, 주님은 ‘겨자씨 한 알과 종(Servant)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종에 관한 말씀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질감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열심히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온 종에게 “수고했으니 가서 쉬어라!”가 아닌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라는 말씀은 비인간적이며 인권 침해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매정한 ‘악덕 사장님’의 모습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조금 바꾸어서 주인이 아닌 종의 발언에 초점을 맞춘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이 일들을 마친 후 주인에게 건넨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앞부분은 빼고 뒷부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참으로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정신없이 살아가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재밌는 일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점점 사라지고, 아무리 즐거운 일을 많이 해도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으며 목마름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복음에서는 계속 일하라고 채찍질하고,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더 빨리 움직이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에 대한 알맞은 답은 독서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매일 그리고 주일마다 성찬례의 신비를 거행하고,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며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불렀고,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놓으셨으며, 성체 성사를 통해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나누어 주십니다. 표면적으로만 예수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우리는 아무리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목마름과 갈증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다정히 친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내면적으로 느낀다면, 해야 할 일의 압박과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2티모 1,8)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잠시 성령의 도움에 의지하여 성경 말씀과 전례 기도문 그리고 성체에 집중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믿음과 사랑으로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해야 할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ㅣ김일권 요한 사도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