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돌보면서 땅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생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처음 농사짓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씨앗을 뿌렸고, 또 씨 뿌린 대로 열매가 나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웠습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고, 자녀를 대하듯 애틋한 마음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지중지 씨앗을 뿌리고 돌본 농작물을 넘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바로 나비 애벌레와 메뚜기, 참새와 비둘기, 고라니입니다. 정말 많은 이웃이 와서 약간의 시식이나 적당히 한 끼가 아니라 자기 밭처럼 들어와 먹고 있습니다.
첫해에 고구마밭에 찾아온 고라니네 가족은 300평 되는 고구마밭의 고구마 순을 거의 다 따먹고 갔습니다. 새벽에 고구마밭을 보고서 내 안에서 ‘아, 경찰서에 고발할 수도 없고, 누가 고라니들을 다 잡아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김장배추는 거의 일정하게 모든 배추의 2분의 1을 갉아 먹었는데, 마치 칼로 베어낸 것처럼 반포기를 먹어치웠습니다. 그래서 김장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배추를 손에 들고 ‘나쁜 고라니 녀석들’이라고 마음속으로 단정 짓고, 어떻게 하면 고라니를 쫓아낼지 궁리하였지요.
동네 어르신들이 저희 밭의 상황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고라니들이 살았던 터전에 수녀님들이 들어온 거잖어. 그러니까 텃세하는 거여. 그리고 수녀님들이 농약도 안 뿌리니 얼마나 맛있겠어. 새들도 알고, 벌레들도 알아. 이제 더 많이 이 집으로 찾아올걸.” 약 올리는 듯한 말씀이었지만 듣고 보니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어르신들은 우리가 농사지은 것보다 더 많이 당신네 밭에서 거둔 농작물들을 우리 집 앞에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배추 20포기 심어서 고라니에게 주고 150포기를 얻었으니 농사를 잘 지은 셈이지요. 그러니 이제는 이 모든 생명과 함께 먹고산다는 생각으로 농사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