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거기 가마이 쫌
있어 보소. 하나둘 ~. 아차! 마스크는
내려야겄네. 이쁜 얼굴이 나와야 되니까.
잠깐 있어 보소.”
늙수그레한 아들이 훠이훠이 모래밭을 걸어갑니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요동하나 없이 서 있는 더 늙수그레한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맑은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마스크를 벗겨드리는 김에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단정히 매만져주기까지 한 아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우리 어매 참 곱소 ~. 다시 하나둘 ~~찰칵!”
아들이 엄마를 바라봅니다. 왼쪽에서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도 바라보더니 바다를 배경 삼아 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푸른 하늘과 바다의 멋들어진 풍경 한번 바라볼 듯도 하지만, 아랑곳없이 그저 어머니만을 바라봅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켜고 이리저리 다리를 옮겨가며 구도를 잡아보는 아들은 그렇게 어머니만을 그윽한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자식 얼굴 외에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서 있다가 얼굴 가득 배시시 웃음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만물이 다시 태동의 기운으로 아름다웠던 지난봄.
강원도 동해 지역에 방화로 인한 산불이 크게 번졌습니다. 그 산불로 인해 하루아침에 집과 터전을 잃은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소중했던 삶의 보금자리는 물론 가족들이 긴 시간 나누어 온 아름다운 일상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지는 아픔을 겪은 이들입니다. 동해시 한섬 해변의 모래밭 위를 거니는 올해 68세의 아들 박승균 씨와 92세가 된 어머니 신정염 씨도 같은 아픔을 겪은 가족입니다.
이제 다시 채워가는 시간이 그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조금씩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귀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덩달아 웃음 짓게 됩니다.
글·사진ㅣ임종진 스테파노(사진 치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