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 현장에서 유행처럼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공동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있으나 단순하게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 하는 집단’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정의를 내리면, 교육 공동체란 교육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집단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무엇이든 함께하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보면 이곳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학부모는 내 자식을 괴롭힌 악마를 처단하는 정의의 용사가 되거나,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내 자식만큼은 지키려는 투사로 변신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면서 때로는 이성마저 잃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이런 학부모를 대면해야 하는 교사는 극도로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적, 물리적으로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트집 잡히는 날에는 몸과 마음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사들이 가장 꺼리는 업무 중의 하나가 학교폭력담당입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사안이 경미하지 않거나 법률에 명시된 네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해결 과정에서 공동체적인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말로는 공동체를 외치면서도 막상 공동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터지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처리하는 것이지요.
폭력의 상황에서 피해자로 분류되는 아이들이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생을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거나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가해자라 불리는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역사가 있고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폭력의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어느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주먹을 휘두르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른 인간을 괴롭히는 데서 기쁨을 느끼겠습니까? 만약 어떤 아이가 몹시도 고약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사이코패스 등의 명확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는 경우라면, 우리는 이 아이의 숨겨진 이야기와 처해진 양육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때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물론 법률에도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로 심리상담, 치료, 특별 교육 이수 등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 특히 가해 학생으로 불리는 아이에게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솔직히 회의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제도적 장치로는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 모두를 보살피고, 가르치고, 길러내는데 너무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아이들을 보다 공동체적인 마음으로 돌본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요?
이 외에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살펴보면 교육의 주체라는 존재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감시하는 학부모, 필요한 것만 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교사들, 배우려 하지 않는 아이들로 파편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어른들의 태도와 생각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교사를 비롯한 다른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뭐라도 이야기하면 곧장 도끼눈을 뜨면서 무슨 상관이냐, 그래서 어쩔 거냐는 말을 내뱉습니다. 그야말로 교육 불가능의 시대입니다.
학교가 교육 공동체라면 각자의 욕구나 입장은 잠시 내려놓고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며 소통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진심 어린 소통과 협력,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가진 장점은 더 크게 만들고 문제는 함께 해결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육의 주체끼리 서로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린 공동체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제로 공동체를 건설하고 사수해야만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도 최근에 우리 아이들과 학교 공동체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하고 내쫓겨도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동체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까지 받으면서까지 모든 주체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마저 저를 받아주고 안아주는 마음을 통해 저는 진심으로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되는 경험을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이 잘못인지 올바르게 깨닫는 경험을 통해 우리 공동체와 저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교회든 학교든 모두가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금까지 존재해온 다양만 문제들이 전혀 다르면서도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모두가 내 자식, 내 방식,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소통하고 서로 신뢰한다면, 조금은 더 행복하고 참된 학교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글ㅣ채성욱 루도비코(시흥 승지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