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에서도 동의할 것입니다. 제가 채식을 하게 된 계기는 동물권과 관련이 깊습니다. ‘동물권’은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권리와 행복할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은 타고난 자연의 것일지 몰라도, 사랑을 하는 대상과 방식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은 한정적이고 편향적입니다. 송아지를 입고 돼지와 닭을 먹으면서 강아지, 고양이를 귀여워하면 ‘동물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득 ‘바다와 자연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면서 물에 사는 생명을 잡아들이며 바다를 더럽히는 제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련의 생각과 공부 끝에 저는 더 이상 동물의 살점을 목으로 넘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만들어진) 욕구를 해소하고자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에 무거운 마음의 짐이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새끼 돼지의 꼬리와 생식기를, 병아리의 부리를 절단하여 좁은 케이지에 가둡니다. 닭이 ‘삐약삐약’ 우는 것을 들어 보셨나요? 인간은 더 많은 치킨을 먹기 위해 병아리에 성장 촉진제를 투여하여 몸집만 불린 병아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농장 동물들은 각종 질병과 오물에 노출되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항생제를 맞습니다. 그 약물들은 고스란히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생산 능력과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수탉은 태어나자마자 산 채로 분쇄기에 갈려 죽습니다. 소의 실제 수명은 20년이지만 공장식 축사에서 길러지는 소의 수명은 5년입니다. 소도 마찬가지로 성장호르몬인 BST를 맞습니다. 인간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매년 암소에게 강제로 정자를 주입하고 출산을 반복하게 합니다. 송아지는 어미와 생이별을 하고 암소는 하루에 3~4차례 압착기를 통해 젖을 배출하게 되면서 유선염에 감염됩니다. 암소는 젖이 축 늘어지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삶을 마감합니다.
동물복지 농장은 괜찮을까요? 동물복지 인증제도와 사육 방식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인증원은 동물의 고통을 고려한 기준이 아닌, 인간에게 조용하고 깨끗한 농장에 대한 기준을 마련합니다. 행복하게 죽는 동물은 없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전 세계 생명·의료 과학 실험실에서는 약품, 화학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일반 대중이 알기 힘든 방식으로 동물을 생체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가톨릭 교리를 통해 가난한 자, 약한 자, 취약한 자, 목소리가 없는 자,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보호할 수 없는 자를 보살피고 옹호할 필요성을 배웠습니다. 동물이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생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교회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비거니즘이 인간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채 동물을 보호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동물을 평등하게 고려하는 사회는 우리 이웃의 고통에도 더 민감히 반응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있습니다.
글ㅣ이원정 아가토니카 (바로 VARO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