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밭 중에 참외를 심은 밭은 마치 안식년처럼 많은 작물을 심지 않고, 오히려 자연 농에서 권장하는 짚을 겹겹이 덮어만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끔히 풀이 뽑힌 그런 밭이 아니라, 썩은 짚 사이로 풀도 자라고 작물도 자라는 그런 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나름대로 질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마토와 가지가 서로 기대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이는 위로 오르고, 참외는 아래에서 능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기댈 말장을 박아주고, 타고 오를 줄을 띄워주면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재촉하지 않는 공간, 그래서 땅이 쉴 수 있는 터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땅의 회복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고, 공생의 관계를 깨닫는 자리, 순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벌레가 있고, 또 나비가 날아들어도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가만히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들 나름의 교향악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생의 관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이 서로에게 허용하는 이 관계, 알고 보면 거류민인 우리조차도 받아들여 준 이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계속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우리, 그래서 다른 모든 피조물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명을 받은 우리 인류는 지금 본래의 멜로디를 무시하고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과의 협주가 아닌, 저 혼자만의 소리로 자만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만약 다른 모든 생명의 노래를 도와달라는 노랫말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제 방식의 생명 돌보기에서 돌아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