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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같은 사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6-24 09:32:37 조회수 : 587

2년 전 늦은 봄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저희의 좋은 이웃인 솔아 아빠려니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데, “,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단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는 신부님이었습니다. 입회 전에 교리교사 할 때 학생이었던 친구가 이제 인천교구의 신부님이 돼서 찾아온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리운 친구처럼 시원한 물 한잔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땀 범벅이 된 저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신부님은 다음에는 일손을 거들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다녀가시는 분들 대부분이 이런 약속을 하시곤 해서 신부님의 이 말씀을 저는 별로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하는 노동이 고돼 보여서 말에라도 마음을 담아 힘이 되어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난히 가물었던 그해 가을, 고구마를 캐며 마치 유물이나 보물을 캐는 모양으로 호미질을 하고 있었는데, 봄에 다녀가셨던 그 신부님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밭으로 와서 돌같이 딱딱한 흙을 삽으로 파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하다가 포기하려니 생각했는데, 쉬는 시간에도 혼자 밭으로 가서 저녁 어스름이 내려올 때까지 묵묵히 삽질을 하였습니다.

 

노동이 끝난 후 함께 밥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마치 성찬례에 참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얼굴들, 손끝마다 물든 까만 때, 가릴 것 없는 목젖 웃음, 가뭄 속에서 여문 고구마의 달콤함, 소박하지만 충만한 식탁을 함께하였습니다. 문득 신부님의 손을 보니 곳곳에 물집이 잡혀있었습니다. 안쓰럽지만 저희 모두 땅과 친해지기 위한 입문처럼 지나온 그 생채기를 덤덤하게 생각하며, 저는 삽질 자주 하시면 물집이 없어지고 단단한 굳은살이 올라와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은 .”라고 하시며 씩 웃으셨습니다.

 

정말 땅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