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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패션 뒤로 멀어지는 새 하늘새 땅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5-13 09:08:40 조회수 : 698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연초록의 잎들은 푸르름을 더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눈을 즐겁게 하지요. 게다가 코로나에 발목 잡혀 지낸 세월이 얼마입니까? 오랜만에 한껏 멋 내고 뽐내며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온 겁니다. 그런데 나들이에 앞서 설레는 마음도 잠시, 옷장을 여는 순간 켜켜이 쌓인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게 없다며 옷장 앞을 서성인 결과물들이지요. 순간 저 옷들을 평생 한 번은 입어볼까?’ 싶은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갑니다.

 

혹시 스파라고 들어보셨나요? 마사지 시설을 의미하는 스파가 아니라 스파(SPA,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의류 기획과 디자인, 생산과 제조, 유통과 판매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패션업체를 말합니다. 소비자들의 요구를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해 1-2주 단위로 신상품을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죠. 주문 후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 푸드(Fast Food)’처럼, 빠르게 제작되고 빠르게 유통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는 새로운 의류 소비행태를 가능케 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소비자는 최신 유행의 옷을 값싸게 살 수 있고, 업체는 빠른 상품 회전으로 재고 부담을 줄이면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서 이미 패션업계에선 대세를 형성하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만큼 쉽게 사고, 쉽게 입고, 또 쉽게 버려진다는 겁니다. 옷이 낡아서, 작아지거나 너무 커져서, 어딘가 떨어져서 못 입는 게 아니라 단순히 유행에 뒤처져서, 싫증나서 안 입게 되는 옷들이 넘쳐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주인에게 버려진 옷들은 의류 폐기물로 분류가 돼 아파트 단지 한 켠에 자리한 헌 옷 수거함에 던져지게 됩니다. 옷 주인들에겐 여기까지가 끝이지요. 하지만 수거함에 던져진 헌 옷들은 선별업체의 분류 선별장으로 보내져 선별작업을 거치게 되고 지나치게 해지거나 망가진 옷들은 소각되거나 매립의 운명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5% 정도의 헌 옷들만이 다시 국내 구제시장으로 돌아가고 80% 이상은 필리핀이나 방글라데시, 인도,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헌 옷 수출 규모가 세계 5위라고 하니, 가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되시지요? 그렇게 개발도상국에 도착한 헌 옷들은 자국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하지만 시장 뒤편에 의류 쓰레기더미로 산을 이루기도 한다는군요. 이 정도면 과잉생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패션산업은 오래전부터 과잉생산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자원파괴를 앞당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표적인 고탄소 업종이라고 합니다.

 

문득 지난해 중고의류를 판매, 대여하는 의류 업사이클링(Up-cycling) 업체 대표를 인터뷰한 기억이 납니다. 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했다는 그녀는 대학에서 패션마케팅을 전공하고 대기업 패션회사에서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우연히 흰색 티셔츠 한 장을 만들기 위해 1톤의 물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애정을 갖고 몸담아온 패션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남들이 입사하길 희망하는 직장도 그만둔 채 방황하기 시작하죠.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삶과 가치관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영국은 의류 업사이클링이 굉장히 활성화된 나라였던 거죠. 사실 아직 우리나라는 의류 렌탈, 재활용 의류라고 하면 구제라는 이름으로, 남이 입던 옷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요. 그녀는 옷을 구매를 통한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함께 쓰고 공유하는 문화의 개념으로 확장시킬 순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는 파티복 중심의 의류 렌탈 사업을 시작으로 조금씩 업사이클링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엔 청바지를 해체해 가방과 앞치마를 만들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그렇게 빛날 수가 없었습니다. 옷이라는 걸 구매하기보다 공유하는 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그녀의 생각, 그녀의 가치관은 당시 인터뷰를 하면서도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발표된 지도 다음 달이면 어느 새 만 7년을 맞게 됩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구가 더불어 사는 집’, ‘공동의 집이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어지는 생태적 회개 그리고 현실적 변화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생태적 관심과 책임, 그건 특정 환경운동가나 시민사회단체에 속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태초에 이루어진 하느님의 창조는 사랑의 질서그 자체였다고 하지요? 신앙이 주는 빛을 따라 마음으로 새기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의 욕심으로 어지럽혀진 사랑의 질서는 제자리를 찾고 비로소 새 하늘 새 땅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느님의 거처가 새롭게 마련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하느님의 백성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 21,3).


 

글ㅣ이지혜 체칠리아(CPBC 가톨릭평화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