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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무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2-18 11:02:16 조회수 : 600

김홍섭 바오로 판사(1915-1965)는 양심에 어긋나거나 소신에 맞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뜻을 지킨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목숨을 걸만한 소신이 생길 때까지 얼마나 깊이 고뇌하고 기도했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사도 법관’으로 기억해요. 그런 그가 ‘나는 날개가 없는 사람, 실족의 화를 면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어요. 법관으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에 더욱 존경심이 돋았어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판단의 갈림길에 서게 돼요. ‘할까 말까? 살까 말까? 먹을까 말까?’ (저는 통닭과 족발 사이에서 매번 우물쭈물 거려요.)

그런가 하면 드물지만 10년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생겨요. 그럴 때면 묵직해진 머리로 길을 떠났어요. 좋은 생각은 걷는 발의 뒤꿈치에서 나온다는 말마따나 걷고 또 걸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걷노라면 깊고 단순해진 생각만이 남더라구요.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죽음을 앞둔 나를 불러내어 물어봤어요. ‘지금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대답은 저의 결정이 되었어요.

그러나 저에게 수준 미달의 판단은 늘 있어왔어요. 게다가 신부랍시고 의례히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순명을 당연히 여기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그 결정들이 순명의 가치가 있었는지 되물으면 너무너무 부끄러워요.

삶의 햇수가 늘수록 얼음 낀 개울을 건너는 것처럼 주의하게 돼요. 공허한 말, 섣부른 판단, 경솔한 행동이 누적되어 스스로 초라해졌기 때문이에요. 인간 행동의 99%는 습관에 달려 있다는데(윌리엄 제임스) 이 가벼움이 습관이 된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정말이지 판단은 조심스럽고 하느님의 평판은 두려워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은 물어야만 해요. 몰라서 묻고 궁금해서 묻고 알아도 물어야 돼요. 나에게 물으면 성찰, 남에게 물으면 배움, 신에게 물으면 기도가 될 것이니까요. 그 물음들이 발을 헛딛지 않도록 해줄 거라 믿어요.


글 | 이재웅 다미아노 신부(국내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