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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더러운 백성”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2-04 10:37:01 조회수 : 980

대통령 선거가 이제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암울한 시기에 희망의 예표를 보여주는 후보가 없으니 참 답답합니다. 재난이 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불평등이 드러나고 분열과 혐오가 자라나는데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은 이렇다 할 공약도, 정책도, 지도력도,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비전도 아쉬움이 크네요.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유다의 민중들도 불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듯합니다. 이사야서 6장은 우찌야 왕의 죽음(기원전 738)으로 시작합니다. 우찌야는 유다를 무려 52년을 통치한 유능한 지도자였습니다. 국제 무역에 뛰어들어 유다의 생활 수준을 높였고, 농토를 확장하였으며,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확장하여 국위 또한 높였지요. 강력한 왕권 아래 정치·경제적 성공에 고무되어 이제는 좀 살만하게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을 유다 민중들에게 왕의 죽음은 큰 상실과 위기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찌야의 뒤를 이을 유능한 지도자가 등장해 유다의 번영을 지속시켜 줄 것을 간절하게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탁월하고 유능한 지도자라 하여 하느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는 메시아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이룩한 정치·경제적 번영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지요. 우찌야 시대 물질적인 풍요의 이면에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탐욕과 윤리적 타락이 있었습니다. 거대 지주들의 출현으로 기초적인 사회구조가 부자들의 수탈과 독점을 허용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었지요. 효율성과 풍요라는 명목하에 상호 돌봄을 원칙으로 하는 계약 공동체의 우애가 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민중을 괴롭히는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며, 힘없는 이들일수록 더 짓밟고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10,1-2).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예언을 들려주며 돈을 버는 거짓 예언자들도 넘쳐났습니다. 어쩐지 오늘날 우리의 언론과 닮은꼴인 이들은 공동선과 정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질적 보상을 많이 주는 이들에게는 성공을 약속하고, 그러지 않으면 재앙을 예고하여 계층 간 갈등을 심화하고 신뢰 체계를 망가뜨렸지요. 왕실과 귀족들과 엘리트들의 편에서 그럴듯했던 세상은, 하느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안으로부터 곪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 죽던 그해, 수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사야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목도하는 초월 체험 이후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6,1-7). 인간의 업적과 정치력에 가려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의 지평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지요. 그가 남긴 말로 미루어 볼 때 이사야는 수도 예루살렘의 주민으로 상류층의 언어와 생활방식에 익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 자신도 시대의 분위기에 젖어 왕의 죽음으로 다가올 혼란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려했던 것은 우찌야의 죽음으로 타격받을 상류층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 진작부터 삶의 터전을 잃고 울부짖고 있던 사회적 약자들이었습니다. 비로소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이사야는 지축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습니다. 당황한 그는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고 한탄하며 자신이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며,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6,5). 인간의 잣대로 세상의 안위를 가늠하며, 인간 지도자의 욕망과 능력에 기대어 살아왔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절망한 이사야에게 사랍이 타는 숯을 부집게로 들고 날아와 그의 입술에 대고 말합니다.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용서와 치유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이사야가 들은 소리는 탄식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이사야는 대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6,8).

이사야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명령은 두렵고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다 백성에게 신탁을 전하되,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여 깨닫지 못하도록 해야 한답니다(6,9-10). 하느님이 당신의 신뢰를 거둔 이 백성, 기회를 주어도 진심으로 돌아올 일이 없을 이 백성이 누구일까요? “입술이 더러운 백성입니다. 인간의 권력에 기대어 하느님을 조롱하고 거부한 이들이지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괴롭힌 이들, 이 땅 한가운데 자신만 살려 한 자들입니다. 고아와 과부들을 울게 한 자들, 하느님을 울게 한 자들입니다

 

이사야의 체험과 신탁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대선을 앞둔 가톨릭 시민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현명한 선택으로 조금 더 자질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우리의 눈길과 마음이 닿아야 할 곳은 대선의 이전투구가 아닙니다.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 노동자, 청년, 여성, 노인들의 눈물, 즉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삶의 존엄을 위한 기본 조건이 무너지고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은 대통령이 누가 되건 한 사람의 지도력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더 극심해지고 있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직시하고, 실업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살피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하느님의 시선이 닿는 이 낮은 곳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우리들 또한 입이 더러운 백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희망 없는 세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글 | 조민아 마리아(조지타운 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