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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주님 마중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12-09 10:44:46 조회수 : 719

<엄마 마중>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태준 작가가 1938년에 쓴 200자 원고지 두 장도 채 안 되는 짧은 글을 그림으로 바꾼 책입니다. 그 안에서는 한 아이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엄마는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질 않습니다. 이 아이는 집에서 기다릴 수 없어 추운 겨울 제법 먼 거리를 걸어 전차 정류장에 가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아이는 전차 차장에게 우리 엄마 안 와요?”라고 묻습니다. 차장이 알 리가 없지요.

아이는 그 추운 날 장갑도 끼지 않고 정류장에 서서 이제나저제나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한 대, 두 대 전차를 보내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변은 더욱 어둑해져만 가는데 전차에서는 엄마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 생각에 움직일 줄 모릅니다. 오직 하나, 엄마 생각에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릴 뿐입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꼭 중학교 때의 제 이야기 같습니다. 저도 이 아이처럼 전차 정류장에서 어머니가 도착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편찮으신 몸으로 물건을 팔러 시장에 가신 어머니가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오질 않으셔서 이 아이와 똑같이 거의 매일 정류장에 서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전차가 저 멀리서 다가오면 저 전차에 어머니가 타고 계시겠지 했는데 다른 사람만 내리고, 또 그다음 전차를 타고 있을까 하고 기다리면 또 아니고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제 일생에 걸쳐 가장 깊은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올해도 우리를 만나러 길을 떠나오십니다. 그림책대로라면 하느님께서도 추운 겨울에는 전차를 타고 오시겠지요.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어라라고 하니, 눈이 오는데 저 멀리 있는 전차 정류장으로 주님 마중을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때 어머니를 기다리던 때처럼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림책의 아이처럼 우리 주님 안 와요?”라고 차장에게 애타게 묻고 있는 것일까요? 정작 이런 물음 앞에 서게 되니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차장은 친절하게도 전차에서 내려와 ! 주님을 기다리는 아이구나하며 그분이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서 있거라, ?” 하고 내게 말하고 떠나갑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코가 새빨개져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그려야 할 <주님 마중> 그림책입니다.


글 |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