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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둥이, 아기 모세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10-29 09:36:22 조회수 : 752

이젠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는데도 버려지는 아이들, 학대받아 위탁 부모를 찾아야 하는 아이들 소식이 들립니다. 통계를 보니, 영유아 보건의료에 쓰는 국가 재정 수준이 선진국치고는 낮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보육원이 시설도 좋고 보육 교사들이 사랑으로 돌보고 있어 다행이지만, 많은 아이들은 시설보다는 따뜻한 부모 밑에서 온전히 관심을 받으며 자라고 싶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저 멀리서 난민으로 국경을 넘다가 죽고 다치는 아이들의 소식도 듣습니다. 부모가 아이들만 살리겠다고 홀로 철조망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던 시기도 그런 비극이 일상이었습니다. 전쟁과 가난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버려야 했던 우리의 과거와 닮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인구가 번성해지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산파들에게 아들이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산파들은 일부러 히브리 여자들은 아이들을 너무 빨리 낳는다고 둘러댑니다. 하지만 그런 핑계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이 살해되자 레위 집안의 어머니는 모세를 바구니에 넣어 강가의 갈대밭에 놓고 멀리서 모세의 누이로 하여금 지키도록 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뜻대로 아기 모세를 파라오의 공주가 거두고 모세의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유모로 삼아 키우게 합니다.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들이 모성이 갖고 있는 사랑의 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업둥이였던 모세를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돼있지 않습니다. 대신 장성한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모질게 박해하는 이집트인을 죽이는 장면으로 건너뜁니다. 모세가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약자를 보호해야겠다는 정의감의 발로일 수도 있겠습니다. 파라오의 딸이면 정의감이나 공감 능력 같은 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었는데, 이 공주님이 키운 모세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버려진 불쌍한 아이를 거둔 공주이니, 따뜻하고 올바른 심성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상상해 봅니다.

 

이집트의 국가 이익만 따지면 적의 아이를 키워서 결국 파라오와 대적하게 되었으니 공주는 대역죄인의 양모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이집트의 이웃이 되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노예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국가가 튼튼하게 지속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모세는 이집트의 관점에서도 필요했던 영웅입니다. 역사를 바꾼 영웅의 시작이 버려진 아이를 거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어쩌면 지금 버려진 아이들 중에도 모세처럼 위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아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아름답게 삶을 꽃피우도록 도와줄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