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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꿈을 꾸었던 소년, 신경외과 의사로 45년을 살다(3)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10-14 08:40:03 조회수 : 888

의사가 된 후 학생 시절 국제 가톨릭 형제회(AFI : 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 회원들과의 약속대로 토요일 오후에 전진상의원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전진상의원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시흥 2동에서 약사, 간호사, 사회사업가의 직업을 가진 AFI 회원들이 서울의대가톨릭학생회(CaSA)출신 의사봉사자들과 함께 1975년에 시작한 자선 병원입니다. 인턴기간을 포함해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칠 때까지 5년 봉사 후 추기경님의 감사패를 받고 19822월 입대했습니다.

 

군대생활을 마치고 19855월부터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에서 신경외과 교수직을 시작했는데, 입대로 중단했던 전진상의원 봉사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수요일마다 퇴근길에 주로 두통, 간질, 요통 환자 등 신경외과 관련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내원하는 환자들의 증상 호소가 다양해짐에 따라 정신과, 비뇨기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해져서 병원 동료들과 CaSA 후배들에게 넌지시 봉사를 권유하였는데, 대부분 봉사에 선뜻 동참해주어 참 기뻤습니다. 1998년 인제대병원, 그리고 2005년에 건국대병원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의료봉사를 위한 이동 거리가 훨씬 멀어지긴 했지만 봉사를 지속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전진상의원에서 저를 통해 봉사를 시작했거나 지속하고 있는 의사들이 이십여 명에 달해 AFI 회원들은 저에게 의사들을 낚는 어부라고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2005년 전진상의원 설립 30주년에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배현정 원장님과 함께 축하케이크를 자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전진상의원에서 봉사하면서 적잖은 환자들이 제가 근무하던 대학병원들에서 필요한 수술을 받고 약물치료도 받았습니다. 그 중 데레사 씨는 20대에 수막염을 앓은 합병증으로 수두증 진단하에 션트 수술을 받았는데, 2006년 어느 수요일 진료에 아무런 연락 없이 오질 않아 집으로 왕진 가니, 반혼수 상태에 빠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션트 장치가 작동하지 못하는 응급상황인 것으로 판단하여 즉시 구급차를 불러 건국대병원으로 데리고 와 응급수술을 통해 션트교체술을 시행했고, 지금은 69세 나이지만 건강한 상태로 현재도 월 1회씩 전진상의원에서 제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전진상의원은 1975년 방 4개짜리 단층집에서 시작해 지금은 호스피스 환자 입원실까지 갖춘 최신식 병원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45년간 바뀌지 않은 것은 진료 전에 제공하는 정갈하면서도 맛있는 저녁식사와 AFI 회원들이 한결같이 기쁘게 봉사하는 모습입니다. 제대 후 첫 직장이 전진상의원에 가까운 대림동에서 시작한 것도 주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 고영초 가시미로(건국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자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