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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꿈을 꾸었던 소년, 신경외과 의사로 45년을 살다(2)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10-08 15:04:12 조회수 : 972

저는 서울 문리대 의예과에 다니면서 청량리 성당에서 중등부 교리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가대에 가입하여 베이스 파트로 활동하면서 성가를 4부로 합창도 하였고, 부활과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특송을 할 때엔 솔리스트 역할도 했습니다. 1973년 본과에 진입 후엔 본격적인 의학 과목인 해부, 생리 등을 원서로 공부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익힌 라틴어 덕에 의학 용어들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를 의사의 길로 이끄신 그분께 대한 감사의 마음에 가톨릭학생회(CaSA, 카사)에 가입하여 열심히 의료봉사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첫 주말 의료봉사의 대상은 청계천 복개작업으로 성남시 변두리로 내쫓긴 철거민들이었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 걸려 성남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진료소는 버스 정류장에서 상당히 멀었는데, 무거운 진료 박스를 동료와 함께 들고 삼십 분 이상 걸으면 손이 아프고 마비되는 듯했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월요일 수업은 졸면서 듣기 일쑤였습니다. 1973년 여름방학에 양평으로 장기 진료를 떠났는데, 지도교수님들과 선배 의사들, 간호사를 포함한 카사 회원 30여 명이 닷 새 동안 약 1,500여 명을 진료하였습니다. 참으로 재밌고 보람되었습니다.

저는 2학년 여름방학 때 강원도 평창에서 장기 진료 봉사 후 카사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주말 진료 활성화를 위해 저는 토요일 오후에 진료할 곳을 물색하였고, 난곡동에서 사회사업을 하고 있던 사라님을 소개받아 그 집에서 매 주말 진료를 했습니다. 난곡 주말 진료는 제가 졸업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었고, 평창에서의 장기 진료도 대화, 봉평, 진부면을 돌아가며 하였습니다.

졸업반이 되어 전공과를 결정해야 했는데, 청진기 하나로 진단을 척척 해내던 내과 교수님들이 부러워 내과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1976317일 신경외과 실습을 돌고 있을 때, 아버님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어 밤 9시 경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뇌혈관조영술이란 복잡한 검사를 통해 급성뇌경막하혈종이 진단되었습니다. 후일 저의 박사논문 지도교수님이 된 신경외과 과장님께서 밤중에 나오셔서 응급 뇌수술을 하셨지만, 아버님께선 식물인간 상태로 9개월 가까이 투병하시다 결국 12월 초 운명하셨습니다.

처음엔 내과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아버님을 곁에서 간호하면서 신경외과의사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의사가 된 1977년 여름에 우리나라에 CT가 도입되었고, 이어서 MRI 등 뇌질환 진단장치와 미세뇌수술, 뇌항법수술 등 치료도 괄목할 만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지난 45년 신경외과의 발전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행복한 신경외과의사로 살아온 저는 그분이 저를 신경외과 의사의 길로 이끄셨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고영초 가시미로(건국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자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