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인 베드로 씨는 퇴근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면 집으로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매일 밤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도 밭에 다녀오신 거예요? 애들이요? 큰아이가 오늘 상을 받았대요. 어머니, 그럼 편히 주무세요! 내일 또 전화할게요.” 내용은 늘 비슷하지만, 결혼한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5년 동안 이어진 매일 밤의 통화. 그것이 베드로 씨에게는 하루의 마감이자 감사 의식이었음을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허전하고, 어머니가 그립거든요. 베드로 씨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아랫목에 묻어두었다가 따끈한 채로 꺼내 주시는 주발에 가득 담긴 밥이 생각납니다. 언제 들어가든,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밥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밥으로 이어지면서, 귀가한 베드로 씨는 괜스레 아내에게 “내 밥 있어?”라고 퉁명스럽게 묻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내뱉는 말인데, 아내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집에서 먹겠다는 전화도 없이 와서 왜 밥을 찾아요? 먹고 들어오는지 알고 애들하고 배달음식 먹고 치웠는데! 당신도 시켜 먹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베드로 씨는 “됐어! 안 먹어!” 하며 버럭 화를 냅니다.
최근에 화난 일을 찾아보라는 질문에 이 사례를 말한 베드로 씨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아내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고, 밥이 남더라도 당분간 저녁밥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 어떻겠냐고요. 이에 베드로 씨는 말했습니다. “그게 가족이에요? 보면 몰라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뭘 그런 걸 다 부탁을 합니까?”
‘가까운 사이라면 말을 안 해도 알아서 해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내 상태나 마음이 어떠한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을 해야 상대는 나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부탁하는 것을 치사하게 생각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며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체적이고 명료한 부탁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는 베드로 씨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아내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베드로 씨는 어머니를 애도하고 마음에서도 보내드릴 시간이 필요하고, 그 허전함을 메꿀 돌봄을 원하는 것입니다. 돌봄을 충족하는 수단은 저녁밥이고요. 그래서 “내 저녁밥을 준비해 줄 수 있겠냐?”라는 부탁이 필요합니다. 아내에게도 남편의 정서가 중요하고 남편을 돌볼 마음이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으면 아내의 귀한 마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부탁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부탁해보세요. 기쁨으로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당신은 부탁하는 용기 덕에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글 | 이윤정 요안나(비폭력대화 국제 공인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