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시어 더욱 친근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실 때,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던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비아냥과 무례함으로 ‘그분을 못마땅하게’(마르 6,3) 여겼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구름떼같은 군중을 모이게 하셨던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기적이 고향에서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 많은 봉사자와 교우들을 만나고, 다양한 전례와 행사를 통해 사목하다 보면,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봉사를 오래 할수록 예수님도 ‘놀랍게 생각할 정도로’(마르 6,6 참조), 믿음이 퇴색하고 불신이 많아지는 모습을 체험하곤 합니다. 오랜 신앙생활과 봉사가 오히려 믿음을 고착시키고,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빠지게 할 때가 있습니다. 제 자신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 너그러워지고 포용심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서의 경험과 연륜이 쌓였다는 생각으로 단정짓고 구분하고 판단해버리는 속 좁고 옹졸한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저를 보신다면, 오늘 복음에서의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라는 씁쓸한 말씀을 또다시 남기신 채, 고향을 떠나듯이 저를 떠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저와 함께 계신 분들은 소위 ‘나환자’라고 불리는 한센인입니다. 저는 이분들과 함께 이곳 성 라자로 마을에 5년 넘게 살면서, 세상에서 이분들처럼 많은 편견과 잘못된 인식, 선입견 속에 힘들게 살아온 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성무일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하루에 네 번 기도방에 모여 기도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총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미 천상의 삶을 사시는 모습을 저는 곁에서 늘 보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사실 성부 하느님께서 계신 ‘하느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우리 성 라자로 마을 한센 가족들은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 속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살고 있으니, 예수님의 고향에서 환영받으실 주님의 자녀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이 아닌, 예수님 본향인 하느님 나라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 | 한영기 바오로 신부(성 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