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인 주술과 마법으로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이비 종교와 달리, 고등 종교는 우리가 집착하는 명예와 재산, 가족의 번성과 같은 세속적 성취가 얼마나 허무한지에 대해 가르칩니다. 자칭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꾐에 빠져 거액의 돈을 쓰고, 그만큼 복을 받고 불운을 피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참 종교의 정신과는 당연히 거리가 먼 것이지요.
반대로 ‘욥기’는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 신심이 깊은 욥의 행운이 사탄에 의해 철저하게 훼손되는 과정, 고통스런 신앙의 체험을 통철하게 기술합니다. 읽는 내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배했던 욥이 왜 그런 불행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욥기를 읽고 묵상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고 지혜로웠다는 다윗과 솔로몬이 승승장구하는 과정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욥기 앞에서, 형편없는 신앙과 정의로움도, 자비심도 부족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껏해야 나 자신이나 가족이 잘 되는 것을 바라며 살아왔으면서, 욥도 피하지 못한 악과 불운의 함정을 피하려 한다면 참 양심 없는 일입니다. 죄 없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고통받아야 했던 욥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약 시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여정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융을 비롯한 많은 분석 심리학자들도 욥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임상에서 욥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면, 내담자들의 눈빛에서 위로와 치유의 빛이 지나가는 것이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욥기를 성장담, 좌절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로만 읽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달라 보입니다. 역사에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 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그런 성공담과 욥기는 많이 다릅니다. 욥은 철저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재산, 명예, 건강, 가족, 자존심 등, 인간으로서 존엄한 자기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많은 세속적인 조건들의 부질없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진심으로 자신이 더 이상 지혜롭지 않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세속적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모습입니다.
신앙의 길에 막 들어서거나, 성경이나 신학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많은 의문이 생깁니다. 비논리적인 것, 왜곡된 것, 논리적 오류들을 꼼꼼하게 찾고 따지고 듭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삶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들이 자랑하는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그저 욥이 했던 것처럼, 우리는 감히 이해하지 못하는 절대자에게 어린 아이처럼 오체투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글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