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때 가장 목소리가 크고 밝게 느껴지는 부분은 아마도 파견의 응답인 “하느님 감사합니다!”이며, 그 외 한 곳을 더 선택한다면, 그것은 “평화를 빕니다!”일 것입니다. 이때만큼은 모든 신자의 얼굴에 미소와 생기가 가득합니다. 이처럼 분위기를 돋우는 ‘평화의 인사’를 미사 시작 때 한다면 좋을 텐데, 왜 주님의 기도 후에 나누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일까요?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제단에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형제들과 화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참조: 마태 5,23-24). 이러한 이유로 초대 교회는 이 예식을 예물봉헌 전에 실행하였습니다. 동방교회는 지금도 이 전통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540-604)에 의해 평화 예식이 지금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평화 예식이 주님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청원의 확장이며, 영성체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의 기도를 영성체를 위한 합당한 마음의 준비라고 받아들였던 것처럼, 우리가 영성체로 주님과 일치하려면, 우선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여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 예식은 주님의 기도 다음에 자리하여 우리의 영성체를 직접적으로 준비시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평화 인사를, 사제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하며 주님이 주신 평화를 그대로 전합니다. 교우들도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말하며 사제에게도 같은 평화를 전합니다. 이어서 사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라고 말하며 평화 인사를 권합니다. 교우들은 “평화를 빕니다.”라고 외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여기서 나누는 ‘평화’는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느끼는 평화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구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얻은 평화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와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가벼운 절이나 악수 및 포옹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한국에서는 “평화의 인사로 가벼운 절을 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2항)라고 정하였습니다. 따라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이 평화가 단순한 인사나 안부를 묻고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과 일치 그리고 친교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자리에 없지만, 여러분에게 화해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그 사람을 생각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