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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해? 교회법대로 해?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08-30 09:23:35 조회수 : 256

얼마 전, 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받은 의뢰인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송이 끝났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의뢰인도 성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소송 결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같은 신앙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반가워 자연스레 ‘신앙’과 관련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 과정에서 우연히 ‘교회법’ 관련 주제가 나오자 그분이 깜짝 놀라며 천주교에 교회법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오랜 신앙인임에도 교회법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깜짝 놀라 천주교에도 당연히 교회법전이 있고 교회법원도 있다고 하자, 그분은 농담조로 “만약 성당에서 싸울 일이 있으면 법대로 해!가 아니라 교회법대로 해!라고 해야겠네요?”라며 웃으셨습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싸우자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현실과, 교회법의 존재를 잘 모르는 신앙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현실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세상법(실정법)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교회법도 당연히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세상법을 다 알고 지키기도 쉽지 않은데 교회법까지 알고 지켜야 한다니, 조금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세상법과 교회법이 동일하다면야 그런 부담감이 덜하겠지만, 문제는 세상법과 교회법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제1항에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함과 동시에, 제2항에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정일치 사회가 아닌 정교분리 사회에서는 세상법과 교회법이 완전히 일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도 사형제도나 낙태문제, 안락사(존엄사),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이혼 및 재혼의 자유 등 사회제도 곳곳에서 세상법의 내용과 교회의 가르침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법과 교회법 두 법체계는 각각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규정하지만 때로는 상호 충돌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식의 양자택일 문제도 아니고, 어느 것이 더 우선한다는 차원의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인이면서 국민인 이상 세상법과 교회법 모두 마땅히 지켜야 하고 상호 존중되어야 하며, 결국 차이나는 부분은 신앙과 양심, 조화로운 이성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어 교회 정신에 맞게 보완시키고 개정시켜야 하는 것이 신앙인이자 교회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고 우리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8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