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노(354~430)는 중세가 시작되는 시기에 살았기 때문에 ‘최초의 중세인’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교부(敎父)’라고도 합니다. 중세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노는 신학, 철학, 문학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고백록』, 『삼위일체론』, 『신국론』이 있습니다. 그중 『고백록』은 빛나는 명작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교회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알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프리카는 로마제국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교도였으나 어머니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성녀 모니카가 바로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입니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은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교만하고 자만심이 강했던 아우구스티노는 쾌락을 추구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 여성과 동거해 사생아를 낳았고, 마니교에 빠져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와 밀라노에서 학문을 가르쳤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암브로시오 성인입니다.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오는 설교를 잘하기로 소문났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역시 주교의 설교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들었으나 점점 진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밀라노에 있는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 아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주교는 모니카에게 “아우구스티노는 반드시 믿음을 되찾을 것입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어떤 사람이 밀라노에 와서 은수자(특히 성 안토니우스)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 설교를 듣고 “아,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하늘나라를 저렇게 애타게 바라는데 나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다니!”라며 크게 반성했습니다. 어느 날, 아우구스티노가 나무 밑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들어서 읽어보아라! 들어서 읽어보아라!” 아우구스티노는 집으로 달려가 성경을 펼쳤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후에 아우구스티노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가 되어 신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믿기 위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믿어라”
(성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