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2023년 7월 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한국 전쟁 정전 70년을 맞아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정전 70년이 되는 올해, 지난 6월부터 모든 본당에 “6.25 정전, 70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이제는 전쟁이 잠시 멈춘 상태인 정전을 끝내고 한반도에서 항구한 평화가 시작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에서는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시편 90,10)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70년-80년이란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오신 분들에게 ‘지나온 삶이 어떠하였는가?’를 물어본다면, 아마도 성 김대건 신부님이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처럼 “돌이켜 보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았다.”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는 참으로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았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치하, 굴욕의 세월 동안 그러하였고, 해방의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 일본 패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 대신 덤터기를 써 시작된 분단의 세월이 그렇습니다. 또한 분단 직후, 남과 북의 적대적 반목은 물론이고,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과 투쟁 역시 끊이지 않아 혼란스러운 세월을 보냈으니,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슬프고 애통한 일은 한 형제인 남과 북이 원수가 되어 3년간 참혹한 싸움을 벌인, 그래서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게 된 6.25 전쟁입니다. 우리 민족은 6.25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전쟁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집안 역시 6.25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입니다. 저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양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북한 공산정권의 교묘한 종교말살 정책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평양교구 성직자들이 잡혀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되었습니다. 피난 오는 과정에서 두 누나는 함께 내려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신학교 들어갈 때 평양교구를 택한 것과, 사제가 되어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한 일은 저에게 소명이었습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제가 신부가 될 때쯤이면 통일이 되어 평양교구에서 사제로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어 50년이 다 되어가고 이제는 곧 은퇴를 하게 되는데도, 통일은커녕 그 희망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1953년 7월 27일에 맺어진 정전협정문에는 정전의 목적이 이렇게 나옵니다.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 (…)”
이 협정문은 전쟁에 참여한 UN군과 중국군이 함께 맺은 것인데,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 회담 과정을 보면, 정전이 길어질 여지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정전이 길어질 수 있는 여지, 이 굴레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누구보다도 ‘남과 북’입니다. 남과 북은 힘을 모아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실은 평화 협정을 맺고 평화로운 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불었던 따뜻한 평화의 바람을 기억합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금방 평화가 올 것 같았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손을 잡고, 평화를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담화문도 발표하였습니다. 조심스러운 가운데 남‧북‧미의 긍정적인 협상 결과를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평화의 여정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건 남북 간의 이해충돌이나 대화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주변 강대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이를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 역사를 통해 경험하였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써야 하는 장본인은 사실 미국도 중국도 아닌 우리 민족입니다. 이를 위해 남과 북은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남북 간 ‘대화와 교류’에 중점을 두었던 대북정책이 북한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방향으로 변해, 한반도에는 지금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북한 또한 정신없이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강경해지면 강경해질수록, 우리 민족에게 남는 것은 대결뿐이고 국민은 전쟁의 그림자로 불안감에 떨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남북의 통치자들이 모두, 국민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기에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평화’를 생각해봅니다.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던 베들레헴 하늘 천사들의 메시지는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였습니다. 평화는 마음이 착한 이들이 누리게 되는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인사 역시 평화의 선물이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 그러나 평화를 전하는 예수님의 손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처가 있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선을 실천하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또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우리는 평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적개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지난 긴 세월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가장 무거운 걸림돌이자 족쇄인 ‘적대감’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 적대감에서 생긴 갈등과 분열은 오랫동안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심지어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왔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었지만, 정치와 문화 그리고 국민 삶의 질은 뒤처지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오래 전 북한을 처음 방문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비자를 받으러 중국에 있는 북한 영사관에 갔는데, 그곳엔 북한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잔뜩 긴장하게 된 우리에게 비자를 발급하던 외교관이 말했습니다. “많이 걱정되시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북한도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얼마나 큰 적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이곳 명동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그날 교황님께서는 강론에서 ‘회심과 용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인 ‘지난 60년 이상’ – 이제는 70년이 되겠지요 – 그 긴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 안에서의 회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회심으로 초대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용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남과 북은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인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내왔던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제애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이제 정전 70주년을 맞은 우리는 한반도에 깃든 강한 대결의 먹구름이 하루빨리 걷히고, 평화의 바람이 다시 불게 해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또한 그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남북의 지도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지난 3월, 교황 즉위 10주년을 맞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바티칸 미디어를 통해 여러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세상, 세상을 다스리는 이들과 인류를 위한 ‘교황님의 꿈’으로서 “형제애, 눈물, 미소”를 말씀하셨습니다. 세계를 많이 다닌, 여행전문가인 어느 외국인은, 가장 경직되고 미소가 없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고, 한국보다 더한 나라가 북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없고 경직된 것은 오랜기간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이 땅에 평화가 새로이 정착되기를 기도하며 그 첫 발걸음으로 우리 교회부터 먼저 ‘형제애’를 살아가며 전파하고, 이웃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온화한 ‘미소’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끝으로 평화의 모후님께 우리 민족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평화의 모후,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간절히 청하오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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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강복 메시지]
한국 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복 메시지
존경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님께,
저는 의장 주교님을 비롯하여 ‘한국 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드리며, 여러분과 영적으로 가까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 드립니다. 여러분 땅의 주교님, 신부님, 수도자, 평신도에게 이 기념일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 14,17)이 넘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자신들의 헌신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날 인류 가족, 특히 가장 힘없는 우리 형제자매에게 고통을 주는 수많은 전쟁과 무력 충돌은,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고 민족들 사이에서 정의와 우호적인 협력을 수호하고 증진하려면 끊임없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극적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평화의 ‘예언자’가 되도록 모든 한국인을 격려하고자 합니다. 평화는 언제나 “개개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 법과 공동선에 대한 존중, 우리에게 맡겨진 환경에 대한 존중,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풍성한 도덕 전통에 대한 존중에 기초”(2019년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정전 협정 기념이 적대 행위의 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참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도 제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장엄한 미사 거행에 참례하는 모든 이를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에 맡겨 드리며 풍성한 천상 은총의 보증인 교황 강복을 기쁜 마음으로 보냅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3년 6월 22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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