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희생자들의 영혼을 따뜻이 안아 주시기를, 그리고 유가족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청합니다. 아울러, 이번 수해로 피해를 입은 많은 국민이 상실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각층에서 원활한 도움의 손길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잃은 안타까움은 자연재해로 인해서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7월 19일(수)에는 수해 실종자 수색에 합류했던 젊은 해병대원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그 전날인 18일 오전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이후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지켜지지 않는 오늘의 상황이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공정과 정의를 가르쳐 주십니다. 공정과 정의는 제도적인 질서만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는 생명을 지향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존엄함이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에 충실해야 합니다. 공정과 정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안녕과 번영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얻는 거짓 안녕과 번영입니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모두가 충만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거짓된 생명입니다.
공정과 정의를 바탕으로 국민 모두의 생명을 지키고 키워내는 한국 사회로 발전하길 기도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고 생명을 보태는 사회로 발전하길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금번 호우로 안타깝게 희생되신 분들과 불합리한 사회적 갈등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수해를 입은 분들을 돕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이번 수해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2023년 7월 2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주교 이용훈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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