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원교구 - 참여마당
  • 교구안내
  • 알림마당
  • 참여마당
  • 간행물
  • 인터넷방송
  • 로그인회원가입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 성경이어쓰기
  • 상담게시판
  • 자유로운글
  •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 앨범게시판

오늘의 묵상

  • HOME > 참여마당 > 오늘의 묵상

9월 1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 조회수 : 105
  • |추천수 : 0
  • |2019-09-12 오전 6:34:40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사실 제가 성령 기도회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성령 기도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픈 사람들도 참 많았는데, 사람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이상한 말을 외치는 모습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지요. 이 모습을 본 뒤로는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면서 피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희소병에 걸렸습니다. 어느 병원에 가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 성령 기도회가 생각났어요. 그러면서 ‘그분들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정말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기도회에 왔던 것이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간절한 마음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령 기도회를 이상하게 보았던 것은 제가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안에는 다양한 기도 방법이 있지요. 성령 기도회 역시 다양한 기도 방법의 하나로 너무나 좋은 기도입니다. 따라서 ‘맞다’, ‘맞지 않는다’가 아니라, 이 역시 주님 앞에 나아가는 훌륭한 기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절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에 비친 이상함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주특기는 ‘사람의 간절함 파악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믿음만을 보고 치유해주시고 여기에 더 나아가 영적 무장까지 시켜주시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 이웃의 간절함을 보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보통 일반적으로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세상의 눈으로는 말도 안 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모범으로 십자가에서 당신을 중상하는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습니다. 사회가 점점 험악해지면서 끔찍한 범죄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 죄는 자기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그 범인을 몽둥이로 직접 처벌한다면 어떨까요? 법적 처벌을 받아서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자격도 없으면서 이웃을 정죄하면, 정죄 받는 것은 그대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심판의 영역이 우리의 영역이 아님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사랑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 세상은 그 보상을 해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더 크신 주님께서 대신 보상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