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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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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 조회수 : 92
  • |추천수 : 0
  • |2019-09-12 오전 6:33:02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콜로새 3,12-17 
루카 6,27-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교만은 겸손과 사랑이 결핍된 지식 >

1999년에 개봉된 ‘매트릭스’란 영화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고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스승 모피어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세계가 꿈인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결코 스승 모피어스를 이길 수 없습니다. 
네오는 그것이 모피어스의 힘과 민첩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숨을 헐떡입니다. 
그때 모피어스가 말합니다.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꿈속에서 어떻게 숨이 찰 수 있느냐는 질문)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 (여기가 꿈이란 현실을 믿으라는 것).”
 
그때야 네오는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일뿐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아니 믿고 싶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배운 지식들 때문에, 즉, 자신은 저렇게 힘이 세고 빠른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 사람이 새처럼 절대 날 수 없다는 것,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어야 한다는 것 등이 자신을 사로잡아 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피어스는 계속 말합니다.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우리가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 모든 지식이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지식은 오히려 우리가 깨어나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 지식의 노예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하면서 어느 샌가 기쁨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이 쌓이면 그분을 더 알게 되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지식이 쌓일수록 교만해져 동시에 내가 배운 지식을 뽐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이 나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바로오 사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신학도 잘못 공부하면 믿음을 잃게 만든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자신의 ‘겸손과 사랑’을 증가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교만은 사랑의 반대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참다운 가치는 하느님뿐이고 하느님께 가는 길은 겸손과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넘지 못하는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신학대전’을 끝마쳐갈 무렵 하느님을 체험하고는 자신이 쓰고 있는 신학대전이 ‘지푸라기’와 같은 쓰레기였다며 바로 집필을 멈추고 미완성으로 남겨놓게 된 것입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은 쌓일수록 자신을 겸손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코린토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남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상들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 말라는 구약의 계명이 지금의 시대에 와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우상들에게 바쳐진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을 꺼리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조롱이라도 하듯 자신들의 지식을 뽐내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비록 죄가 아닐지라도 이웃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지식만 믿고 살아가는 이들은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이슬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됩니다. 
그 사람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이 만드는 것입니다. 
 
잔소리는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랍니다. 
아무리 옳은 지식이라도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잔소리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다 잡힌 1년 새 14건의 절도를 했던 A양(16세)은 당연히 소년보호시설에 들어가야만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는 다정한 소리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라는 말만 재판정에서 A양에게 외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 아이가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결국 이 말을 다 마쳤을 때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전년도에 아이들로부터 집단적으로 폭행을 당했었기 때문입니다. 
 
법이 아닌 사랑을 지녔던 판사는 법대로만 하려고 하는 이들보다 법의 참다운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모든 지식을 완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쌓아가면서도 결코 그것에 겸손과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교만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