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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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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 조회수 : 162
  • |추천수 : 0
  • |2019-02-12 오전 9:03:33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코 7,1-13 
 
< 세속의 자녀와 하느님 자녀와의 차이 >

백만장자는 어느 때든 사용할 수 있는 10억 정도의 현금과 현금화 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보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라 스탠리 폴로(Sarah Stanley Fallaw)는 자수성가한 600명의 백만장자를 연구하여 그들의 공통점 여섯 가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여섯 가지는 ‘절약정신, 자신감, 책임감, 계획성, 집중력, 유행에 무관심’입니다.
남들처럼 쓰다가는 돈을 모을 수 없어 투자를 위한 마중물 자산을 평생 마련하지 못합니다.  
 
미혼 때는 잘 안 모이지만 결혼하면 돈이 모일 수 있는 것이 그만큼 악착같이 절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약정신 없이 자수성가할 수 없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어도 그 돈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자신감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마음입니다.
자신감은 곧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실패를 항상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 자신감이 있어야 어떤 분야에서건 꼭 필요한 인재가 됩니다. 
 
그 다음엔 책임감입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남 탓 하는 사람과는 절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 탓하는 사람은 항상 밖에만 보며 자신의 집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살피지 못합니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그리고는 계획성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향만 잘 잡고 있다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의식이 없다면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며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계획성이 있는 사람은 오늘 무슨 일을 꼭 해내야하는지 압니다. 
그래서 꾸준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집중력입니다. 
집중력은 주위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은 작은 소리와 작은 평가에도 민감하여 한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은 유행에 무관심 하라는 것인데,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위의 다섯 개를 다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눈치보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약도 못하고 자신감도 떨어지며 남 탓하고 자신이 세운 계획에 집중하지 못하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출처: ‘백만장자 600명 연구하고 내린 결론... 6가지 공동점이!’, 잡화점, 1boon] 

세상에도 법이 있고, 그 세상의 법과 반대되는 법도 있습니다. 
위 사람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백만장자들은 대부분 세상의 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입니다.  
 
세상의 법에서 자유롭기 위한 새로운 법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자들은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에, 일반 대중들처럼 욜로(‘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 “인생은 한 번뿐이니 소비하고 즐기자.”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함)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마카롱 하나로 행복할 수 있다.’는 식이지만 꿈을 좇지 않게 만들기도 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장기적인 재산 형성 계획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꼭 자수성가하여 백만장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세상의 법칙과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신념은 본받아야합니다.  
 
헬조선이니, 경기가 안 좋아서 등 남의 탓이나 환경 탓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여섯 개의 법칙이 주님께서 가르치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세속의 법칙과 반대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법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법칙을 따른다고 믿으면서도 세속에 속해있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생활신조를 법으로 삼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보다 인간의 전통을 더 중시합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이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법까지도 돈을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 부모에게는 줄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들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타인의 법칙에 지배받게 됩니다. 
법은 잘 보이려고 지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잘 보이려면 담배를 끊으라는 아내의 법칙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하느님보다는 세상의 법이나 전통에 지배받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은 많을지라도 전 인격적인 성공은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취감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행복을 세상적인 명예나 쾌락으로 채우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속에 속하게 됩니다. 
 
어떤 재벌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다 기부하면 자녀들에게 원망을 사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들도 저처럼 자수성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뿐입니다.” 라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칙에 휘둘리지 않고 자녀도 그렇게 키우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도 이들은 그 기운에 눌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오른쪽으로 가도 혼자만 왼쪽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압력에 기죽지 않고 당당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느님께만 인정받으면 되기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엔 무관심한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법에 지배받고 있는지, 하느님의 법에 지배받고 있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처럼 자신들이 하는 행위로 이웃을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법에 지배받고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타인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심판하거나 남의 탓이나 환경 탓을 할 만큼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죄책감은 하느님의 자녀라 믿지 않기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믿어 생기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을 판단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반면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으로 생기는 죄책감은 하느님께 죄송하기는 하지만 그런 자신을 받아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않기 위해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세상 것들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와 세속의 자녀의 차이입니다. 
세상과 하느님,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느냐가 내가 어디 속해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법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