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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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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조회수 : 58
  • |추천수 : 0
  • |2019-02-11 오전 9:07:12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창세기 1,1-19
마르코 6,53-56 
 
< 인간의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느님! >

최근 선친(先親)을 비롯한 형제들, 수녀님들, 지인들을 줄줄이 떠나보내면서 느낀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평소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나시는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평소 살아오신 모습이 병실에서,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재현되더군요. 
 
살아생전 언제나 이웃들에게 친절과 배려, 감사와 기도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은, 떠나시는 모습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렵고 떨릴만도 한데, 본인보다는 이웃들을 생각하시더군요. 
 
평소 살아오신 모습이 병실에서도, 임종 직전에도 그대로 재현되더군요. 
기도와 감사 배려의 삶을 산 사람들은, 병상에서도, 죽음의 길에서도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던군요.  
 
일찌감치 남은 가족들에게 털끝만큼의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연명 치료 거부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시더군요. 
 
일찌감치 ‘장기 및 시신 기증 각서’에 사인을 하시더군요. 
뿐만 아니라 미리미리 품격 있는 유언서도 작성하시더군요. 
그렇게 사전에 소박하고 품위있는 떠남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름하여 ‘착한 죽음의 연습’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모습도 드물지 않습니다. 
분노와 원망, 거부와 짜증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듭니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병실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환우들은 이제 기력도 쇠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더니, 결코 그게 아니더군요. 
그분들도 행할 수 있는 사도직이 분명 있더군요.
이름하여 ‘병실 사도직’입니다.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때, 그 고통을 나 혼자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함께 견뎌내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면서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에 조금이라도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병원 침상에 누워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의료인들, 간병인들, 가족들에게 틈만 나면 고맙다, 감사하다, 기도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보다 더 힘겨워하는 환우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전하는 일, 이보다 더 큰 사도직이 다시 또 있을까요? 
바로 병실 사도직입니다. 
 
오늘 루르드의 복되신 동저 마리아 기념일인 동시에 세계 병자의 날을 지내면서, 고통 중에 있는 환우들을 기억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 얼마나 극심한지 잘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리고 성모님께서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그 큰 고통 눈여겨보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극심한 고통, 이 참혹한 통증, 평생 지속될 것 같지만, 주님 은총에 힘입어 다 지나간다는 사실,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겪고 감내해야만 하는 이런 저런 고통들, 수많은 실패들, 끝도 없이 반복되는 바닥 체험들 앞에서 너무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닥 체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 떄문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인간의 끝에서 하느님께서는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