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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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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 조회수 : 185
  • |추천수 : 0
  • |2019-02-11 오전 9:01:11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코 6,53-56 
 
< 내가 이웃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은? >

화가 이중섭이 하루는 병을 앓고 있는 친구의 문병을 갔습니다. 
친구가 아픈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문병이었기에 그는 늦게 찾아온 것을 미안해하며 친구에게 작은 도화지를 건넸습니다. 
 
“자네 주려고 가지고 왔네. 이걸 가지고 오느라 늦었네. 자네가 좋아하는 복숭아라네.” 
 
그는 친구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다 줄 돈이 없어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선물을 줍니다. 
선물로 내가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줍니다. 
그 선물이 받아들여지면 그 선물을 주는 사람도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일반대학교 다닐 때 어떤 자매가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마음’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여자가 마음을 준다는 것은 다 준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찾을 것이고 그것을 선물하려 할 것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 하는 바로 그것이 내가 가장 귀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성탄 선물로 과자와 커다란 사과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사과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먹기가 아까웠습니다.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성당과 사는 집의 거리는 아이 발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성탄 선물 꾸러미를 한 시간 넘게 집으로 가져오면서 추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그 큰 사과를 보고 좋아하시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착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왜 먹지 않고 가져왔느냐?”고 하셨지만, 내심 감동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먹을 것을 부모님께 드린 이유는 어떤 중요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소속되고 싶은 욕구’입니다. 
부모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과자와 사과를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소속되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좋아하는 것을 제물로 바쳐야합니다. 
사람에게 먹는 욕구가 매우 중요한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소속감을 느끼기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만날 때 내가 선물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웃과 잘 지내며 그런 소속감을 통해 오는 행복을 느끼도록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습니다. 
모두에게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도 가장 귀한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면 그건 예수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두 농부는 무 농사를 졌고 모두 좋은 무를 생산했습니다. 
한 농부는 이 모든 것이 원님 덕분이라며 가장 큰 무 하나를 원님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농부는 그 무가 원님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며 아무 것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큰 무를 선물로 받은 원님은 감동하여 그 농부에게만 답례로 황소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줄 것이 있다고 합니다. 찾으려하지 않을 뿐입니다. 
신앙인으로서는 내 안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웃이 돈이나 주면 좋아하지 예수님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선교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무 취급하는 것입니다. 
일단 내가 귀하다 여기면 선물하고 보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치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았던 사람들은 빨리 그분에게 병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그 분을 쫓아서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걸어 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또 어디로 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뛰어다닌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을 여유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생명의 샘물을 발견했는데, 어찌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뛰어다니며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예수님이 이웃에게 전해줄 가장 귀한 선물이 안 될 때 나도 예수님의 가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농사를 잘 짓고도 바치지 않은 무로 만들어선 안되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