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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촌 건설의 주역 신태보 베드로와 그의 며느리 최 바르바라|

  • 홍보실(ho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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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4 오후 3:29:18

2019년 6월 16일자 수원주보 4면

수원교구 기해박해 순교자의 삶과 신앙5


교우촌 건설의 주역 신태보 베드로와 그의 며느리 최 바르바라


신태보 베드로(1770년~1839년)는 용인 또는 이천(동산밑) 출신으로, 20대 초반인 1791년경 천주교를 전해 들었고, 그의 친척 이여진 요한과 함께 1795년경 신앙을 받아들였다. 1801년 신유박해로 폐허가 된 신앙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그는 용인의 순교자 가족 40여 명을 모아서 강원도 풍수원 쪽으로 이주해 교우촌을 세웠다. 신태보는 이여진과 함께 주문모 신부 순교 이후 성직자가 없는 한국교회에 다시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였다. 1811년, 이여진은 동료 1명과 함께 신태보가 마련해 준 경비로 북경에 가서, 북경 주교와 교황에게 보내는 신자들의 서한(신미년 서한) 2통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 후 신태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거나 교리서적을 필사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경상, 전라, 충청도를 통틀어 삼남의 ‘천주교회 우두머리’로 낙인찍힐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만년에 경상도 상주 잣골로 내려가 은신하였으나, 1827년 정해박해 때 체포되었고, 이후에도 한결같이 신앙을 고백하여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국왕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아서 무려 12년간 전주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1839년 5월 29일(음 4월 17일) 전주 장터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수감된 동안 샤스탕 신부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옥중수기에는 감옥생활의 온갖 고초와 동료 신자들의 애덕행위가 잘 기록되어 있다.


신태보의 며느리 최 바르바라(1790년~1840년)는 1801년 여주 순교자 최창주 마르첼리노의 딸이다. 결혼 후 얼마 뒤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 신태보를 봉양하였다. 궁박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내하며 교회 일을 도왔고, 시아버지가 전주 감옥에 수감된 12년 동안에는 교우들에게 의지하여 살면서도 힘겨운 옥바라지를 계속하여 그가 굳건한 신앙심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었다. 1839년 전라도 광주에 있던 홍재영 프로타시오의 집에서 교우들과 함께 체포된 최 바르바라는 전주로 압송되었다.


전주 법정에서 최 바르바라는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1801년에 순교한 최창주의 딸이며, 몇 달 전에 참수당한 신태보의 며느리라고 당당히 밝히고, 1840년 1월 4일(음력 기해년 11월 30일) 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글. 원재연 하상바오로(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